많은 분들이 서양에서는 숫자 ‘13’을 불길하게 여긴다고 알고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이탈리아에서는 그보다 더 특별하고 두려운 수가 존재합니다. 바로 ‘17’입니다. 실제로 이탈리아에서는 일부 호텔이나 병원에서 17번 객실을 아예 만들지 않으며, 항공기 좌석도 이 숫자를 건너뛰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단순한 숫자에 대한 기피를 넘어서, 고대의 언어적, 종교적 상징과 깊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탈리아에서 숫자 17에 대한 불길한 인식은 로마 숫자 ‘XVII’에서 비롯됩니다. 이 철자를 변형하거나 재배열하면 ‘VIXI’라는 단어가 되는데, 이는 라틴어로 “나는 살았다”라는 뜻입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과거형 표현 같지만, 이 말은 “내 삶은 끝났다” 혹은 “죽었다”는 뜻으로도 해석되기 때문에, 고대 로마 시대부터 불길한 암시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무덤에서 시작된 두려움, 살아 있는 문화적 유산
고대 로마의 묘비에는 자주 “VIXI”라는 단어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이는 죽은 자가 생전에 살아 있었음을 표현하는 문장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 표현은 죽음 자체를 상징하는 문구로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17이라는 숫자를 보면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죽음과의 연결고리를 떠올리게 되었고, 그로 인해 자연스럽게 꺼리게 되었습니다.
현재도 이탈리아 일부 지역에서는 장례식 후 첫 17일 동안 특별한 행동을 삼가거나, 여행과 같은 중요한 일정을 피하는 관습이 남아 있습니다. 실제로 이탈리아 북부 지방에서는 집 안에 ‘XVII’이라는 글자가 보이는 물건을 두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 예의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일상 속에 스며든 숫자 회피 현상
이탈리아의 일상에서는 숫자 17에 대한 민감함이 은근히 드러납니다. 대표적인 예로는 다음과 같은 사례들이 있습니다.
알리탈리아 항공
자사 여객기 좌석 번호 중 17번을 생략하고 16A 다음에 18A를 배치한 적이 있습니다.
피아트
과거 차량 모델 중 17이라는 숫자를 모델명에서 제거하거나 다른 번호로 대체한 바 있습니다.
일부 병원과 호텔
17번 방이 존재하지 않으며, 대신 ‘16A’ 또는 ‘18A’라는 식으로 우회합니다.
스포츠 경기
17번을 배정받은 선수가 부상을 입거나 경기가 불운하게 끝날 경우, 해당 번호는 다음 시즌에 회수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처럼 17은 단지 수학적 표기가 아닌, 강한 심리적 기호로 작용하며, 사회적 행동에도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는 문화적 상징이 되었습니다.
현대 이탈리아 사회에서의 변화와 지속성
이탈리아의 젊은 세대에서는 점차 이러한 금기에 대한 인식이 약해지고는 있지만, 여전히 숫자 17은 꺼림칙한 대상으로 간주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전통을 중시하는 가정이나, 고전적 가치관을 지닌 고령층에서는 이 숫자에 대한 민감도가 뚜렷합니다.
게다가 이탈리아에서의 미디어나 오컬트 콘텐츠에서도 숫자 17은 ‘불운’이나 ‘비극’을 상징하는 도구로 종종 활용됩니다. 인기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도 이 숫자가 사건의 전조로 사용되는 장면이 여러 차례 등장하였으며, 일부 공포 영화의 제목에도 17이 포함되어 긴장감을 자아내는 소재가 되기도 했습니다.
숫자에 얽힌 세계의 미신들
숫자에 특정한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금기시하는 문화는 이탈리아만의 현상이 아닙니다. 여러 국가에서도 다양한 수치에 신비롭고 때로는 불길한 의미를 부여해 왔습니다.
한국, 중국, 일본
‘4’는 ‘사(死)’와 발음이 같아 병원, 아파트, 승강기 등에서 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심지어 ‘F’로 표기해 우회하기도 합니다.
미국, 영국
‘13’은 기독교적 전통에서 배신과 연결되어 있어 불운의 숫자로 인식되며, 금요일과 결합된 ‘Friday the 13th’는 대표적인 불운의 상징입니다.
태국
숫자 ‘6’이 거꾸로 보면 악마를 상징하는 ‘9’로 보이기 때문에, 일부에서는 불길하게 여기기도 합니다.
인도
‘8’은 파괴와 연결된 행성 ‘샤니’(Saturn)를 상징해 결혼이나 중요한 행사에서 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처럼 전 세계적으로 숫자는 단순한 계산의 수단을 넘어서 문화적 신념과 두려움, 그리고 역사적 기억이 결합된 상징물이 되었습니다.
불길함 속에 숨은 문화적 의미
숫자 17에 대한 이탈리아인의 회피는 단순한 미신을 넘어서, 죽음에 대한 고대인의 감정과 언어의 힘이 어떻게 현대에도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단어의 형태가 불안감을 일으키고, 그 불안이 실제 행동의 제약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이는 하나의 사회적 리추얼로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금기는 외부인에게는 낯설고 우스울 수 있지만, 내부인에게는 정체성과 공동체의 일체감을 상징하는 중요한 문화적 기호이기도 합니다. 외국인이 무심코 언급한 17이라는 숫자가 현지인에게 불쾌함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타문화에 대한 이해와 배려는 필수적입니다.
문화 탐색자의 시선
이탈리아를 여행하거나 비즈니스를 위해 방문할 기회가 있다면, 숫자 17에 대한 이들의 감정을 존중하는 것이 좋습니다. 예약 시 17번 방을 피하거나, 선물 포장에 17이라는 수치를 피하는 등의 세심한 배려는 상대방에게 문화적 이해와 존중의 태도로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이런 숫자 금기를 단순히 비과학적인 미신으로 단정 짓기보다는, 그 속에 담긴 역사와 문화, 그리고 인간의 감정에 대한 깊은 통찰로 바라볼 수 있다면 더욱 풍부한 여행과 교류의 경험이 될 것입니다.
숫자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 안에 깃든 사람들의 두려움과 기억은 결코 단순하지 않습니다. 17이라는 수치 하나에 이토록 깊은 상징과 역사가 담겨 있다는 사실은, 문화가 단순한 형태를 넘어 삶 전체를 구성하는 무형의 조각임을 일깨워줍니다. 다음번 이탈리아 여행길에서, 혹은 숫자 하나를 고를 때 문득 17을 떠올리게 된다면 당신은 이제 단순한 관찰자가 아닌,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선 문화 탐험가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다음 편에서도 전 세계를 가로지르는 금기의 길을 함께 걸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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