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의 새해인 **'뗏(Tết)'**은 단순한 달력의 시작이 아니라, 삶의 흐름 전체를 새롭게 여는 상징적인 순간입니다. 이 시점에서 가장 주목받는 존재가 바로 ‘처음으로 문을 여는 사람’, 즉 첫 손님입니다. 이 전통은 단지 인사를 나누는 정도가 아니라, 그 사람의 기운이 한 해의 흥망을 좌우할 수 있다고 믿는 믿음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베트남에서는 설날이 다가오면, 평소보다 훨씬 더 사람의 성격, 성향, 직업, 심지어 태어난 해까지 고려하여 첫 방문자를 ‘선택’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집주인이 직접 신뢰하는 지인을 초대하여 정해진 시간에 들어오도록 요청하는 것은 흔한 일이죠. 이러한 행위는 ‘xông đất’ 또는 ‘đạp đất’이라 불립니다. 이처럼 첫 손님의 방문은 단순한 인사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으며, 이를 통해 한 해의 복, 평화, 재물, 건강이 결정된다고 믿는 전통이 뿌리 깊게 내려오고 있습니다.
조상신과의 만남, 그리고 기운의 흐름
이 풍습의 배경에는 베트남 고유의 유교와 민속 신앙이 혼합된 전통적 가치관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새해 첫날은 단지 달력이 바뀌는 날이 아니라, 조상신과 수호령이 집으로 다시 돌아오는 날이기도 합니다. 그 순간을 맞이하는 첫 번째 외부인은 일종의 ‘중개자’ 역할을 하며, 그 사람의 운과 성향이 집 안에 머무는 기운을 바꾸는 결정적 존재로 여겨집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단지 인간적 호감이 아니라, 음양오행, 즉 상대방의 띠와 태어난 해가 집주인의 것과 잘 조화되는지를 따져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를 위해 사주를 보는 이들이 설날을 앞두고 각 가정을 찾아 조언해주기도 합니다.
또한, 첫 방문자는 너무 이른 시간에 오는 것도, 늦게 오는 것도 금기시되며, 보통 자정 직후나 이른 아침이 적절하다고 여겨집니다. 손님은 빈손으로 오기보다 작은 선물, 특히 ‘좋은 기운을 담은 것들’을 가져오는 것이 예의로 여겨지며, 음식을 나누는 것도 흔한 관례입니다.
행운을 가져온 이, 그리고 그 반대의 이야기
베트남 하노이 인근의 한 가정에서는, 매년 뗏이 되면 늘 같은 사람을 첫 방문자로 초대합니다. 그는 마을에서도 신뢰받는 상인이며, 수십 년 동안 사업과 가정 모두에서 풍요로움을 누려왔습니다. 이 가정의 주인은 “그 사람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우리 집에도 복이 들어온다”고 이야기합니다.
반면, 호찌민의 한 주민은 새해 첫 손님이 오랜만에 찾아온 친척이었는데, 그해 가족 사업에 큰 위기가 닥쳤다고 말합니다. 이후 그 집은 오랫동안 ‘무작위 손님 방문’을 삼가고, 철저히 사전에 조율된 사람만을 초청하는 방식을 고수하게 되었죠.
이처럼 단순한 인사의 의미를 넘어선 방문자의 영향력은 지역 사회에서도 일종의 ‘구전 신화’처럼 회자되며, 실제 삶의 결정적 요소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디지털 시대에도 이어지는 관념
현대 사회로 접어들며 많은 문화가 변화하고 있지만, 베트남의 첫 손님 전통은 여전히 중요한 의례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특히 도시보다는 농촌에서 그 의미가 더 강하게 남아 있으며, 대도시에서도 전통을 중시하는 가정은 여전히 ‘첫 인연’을 신중하게 선택합니다.
재미있는 점은, 이러한 전통이 이제는 온라인에서도 변형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일부 사람들은 자정이 지나자마자 첫 메시지를 보내는 사람, 혹은 영상 통화를 건 첫 지인을 의미 있게 여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즉, 현실 공간에서의 ‘첫 발자국’뿐 아니라 디지털 접촉 역시 기운을 나누는 행위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죠.
또한 기업에서는 새해 첫날 가장 먼저 사무실에 출근하는 직원을 선정할 때에도 이 풍습을 응용하여, 긍정적이고 에너지가 넘치는 인물을 일부러 그 역할로 지명하기도 합니다.
유사한 개념을 가진 다른 나라들의 전통
이와 비슷한 문화는 아시아 각국은 물론, 다른 대륙에서도 종종 발견됩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시작’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시작을 함께하는 존재에 주목해 왔기 때문입니다.
한국
우리나라에서도 ‘설날에 첫 발을 들이는 사람’에 대한 개념이 존재합니다. 특히 옛날에는 ‘첫 손님이 부정한 기운을 지니면 그해 운이 기울 수 있다’는 믿음이 퍼져 있었으며, 아예 문을 닫고 아침 해가 뜰 때까지 외부인을 피하기도 했습니다.
중국
베트남과 유사하게 ‘開門紅(카이먼홍)’, 즉 문을 처음 열 때 행운이 따르기를 바라는 풍습이 있습니다. 붉은 봉투를 문 앞에 붙이거나, 상서로운 인물이 처음 들어오도록 하는 관례도 있습니다.
스코틀랜드
‘퍼스트 풋(first-footing)’이라 불리는 새해 전통이 존재합니다. 보통 키가 크고 검은 머리를 가진 남성이 첫 방문자가 되어야 행운이 들어온다는 믿음이 있으며, 이들은 술이나 빵 등을 들고 들어오는 것이 관례입니다.
일본
‘하쓰모우데(初詣)’라는 신년 첫 참배 문화는 첫 발걸음을 통해 한 해의 길흉을 점치는 전통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는 신사나 절에 직접 방문하는 형식으로 나타납니다.
이처럼 ‘처음 만나는 인연이 운명을 바꾼다’는 믿음은 문화마다 형태를 달리하면서도 유사한 구조를 지니고 있는 셈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새로운 시작에 의미를 부여합니다. 베트남의 설날 첫 손님 풍습은 단순한 미신이나 옛 풍습을 넘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기운이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누가 먼저 들어오는가에 따라 그 해의 공기가 달라진다는 믿음 속에는, 단지 복이나 재물뿐 아니라 함께하는 인연의 소중함을 재확인하는 메시지도 숨어 있습니다. 다음번 누군가의 문을 열게 된다면, 혹은 내 문을 누군가가 두드린다면 그 행위가 한 해의 복을 여는 시작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 조금 더 정성스럽고 따뜻하게 맞이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새로운 한 해, 첫 인연이 당신의 길 위에 환한 등불이 되어주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등불이 또 누군가의 마음까지 환히 밝혀주시기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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